소나무처럼 사는 사람도 있을까.
그 산에서 그 사람을 보며 하루 살다 왔습니다.
경북 의성에서 청송으로 가는 길, 점곡을 지나 잠시 구도로를 끼고 얼마쯤 가다 농협 주유소 못 미쳐 모퉁이를 막돌아 산쪽으로 난 좁은 언덕 길, 한 이백미터나 오르자 솔숲에 가려진 집한 채가 보였습니다.
정자같은 소나무 집,
집뒤에는 금방이라도 군불 지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를 것 같은 굴뚝이 키큰채 있고 그냥 소박한 기와집 한채, 주변엔 구절초가 흐드러지게 웃고 서 있었습니다.
십여년전, 이산 저산 소나무를 찾아 나섰다가 이 곳에 와 소나무처럼 산다는 '노'씨 성을 가진 한 양반,
지리산 어느 도사같은 분입니다요만은 실은 삼십여년을 나무와 같이 살아온 원예전문가라고 자기를 소개하십니다요.
아~무슨 일이든지 십년을 세번, 꾸준히 매진하면 전문가가 되는구나...
그는 산을 가질 자격이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해안가에서 자라는 해송을 들먹이며 아는 체 하자, 그는 육송에 대하여 열심히 내게 설명해 주기도 했다. 소나무 몇 그루만 심어놓으면 격이 달라진다고도 했다. 산에는 자리를 잡기도 하고 이식을 위해 표시를 해둔 소나무가 여럿 눈에 들어왔다.
"소나무는 다른 나무와 다릅니다요"하고 말씀하시는 폼이 예사롭지 않다.
5만여평 산에는 온통 자연 그대로... 우리 일행이 금방 한숨배돌면서 채취한 산나물이 가득할 정도, 지천에 자연이 허락한 먹거리다.
씀바퀴, 왕고들빼기, 배초향, 돌나물, 쑥, 미역취, 참나물, 고사리도 섞여 있다.
야생초-산나물, 약초를 보호하는 팻말에서도 알 수 있듯이 '유연송 수목원'은 그냥 살아 있는 수목원이었다.
ceo혁신2기 모임에서 토요일에 출발하여 (6월 18일~19일) 의성 냇가에서 천렵을 한다 하여 나섯던 길인데
이런 산숲으로 오리라고는 전연 예상도 못하였지만, 회장을 맡은 김영달 ' 마이크로하이테크 ' 공장장의
고향 친구의 산장이라고만 차안에서 듣게 되었던 터다.
회원 중 김상호, 정경원, 김영달, 장기수총무가 참석하였고, 마이크로하이테크 한 소장이 낚시꾼으로 함께 하였고, 양재호, 안문균 사장이 뒤에 합류한 모임이었다.
주섬주섬 낚시 가방을 챙겨 다시 산을 내려와 냇가에 이르러 보니,
타는 목마름으로 샛강의 물줄기는 시원찮았다.
소위 '파리 낚시' - 피래미 낚시에 열올리는 낚시꾼을 헤방놓을 양으로 6월의 태양은 너무 따가웠다.
나는 슬쩍~ 잡은 물고기중 몇 마리를 꾼들 몰래 자연으로 돌려보냈다.
물고기들은 그렇게 자연으로 슬며시 돌아가기도 했다.
냇가에서 줏어 온 돌판에 돼지고기를 구워 먹는 맛도 한멋이었지만,
특유의 '어탕 라면'을 맛내게 끓여내는 김영달 회장의 익숙한 솜씨는 한두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어탕국수는 먹어 보았지만 어탕라면은 처음이다.
방금 잡아 온 피래미들을 물을 부어 삶아낸 뒤, 냇가에서 줏어 온 납짝돌맹이 2개를 잡고 방아쩧듯 어깨어내어 몇 번의 국물을 번갈아내더니 뼈를 추려낸 뒤 그 국물에 갖은 양념을 넣고 끓게하였다.
옆에 앉았던 김상호 전회장이 라면을 넣었다.
후루룩후루룩 건져올려 산공기를 몇 번 불어넣더니 한사발씩 퍼내어 맛보라고 건낸다.
천하일미다.
난생 처음 어탕라면이라 , 솔숲에서 채취한 나물들을 살짝 대쳐내어 쌈장에 찍어먹는 그 맛까지
맛 본 사람만이 안다.
우리 일행은 혀를 내둘렀다.
"이래야 한철 여름을 잘 보낼 수 있어"하는 산장지기(?)의 말솜씨는 바람소리 같다.
솔바람이 볼 가까이까지 다가왔다.
자연이 우리에게 가끔씩 "이렇게 내려놓고 살라"고 얘기하는 것 같다.
늬엇늬엇 해는 구름위에서 떨어지고
의성 점곡 마을 그 너머로 저녁노을이 내려왔다. 멀리 안동 쪽에서 강한 불빛이 몇개 점등하고 있었다.
"밀양 만어사의 노을이 좋더라"고 했더니 주인장은 "솦잎사이로 보이는 이 곳 노을이 사진에는 잘 나옵니다"고 한마디 건낸다. 오늘따라 노을은 붉게 타오르진 않았다.
언젠가 인연따라 또 노을은 오겠지...
어둑어둑 마을 불빛이 멀리 이곳 산까지 쫓아왔다.
소쩍새도 왔다.
개구리 울음소리가 산 아래에서 가깝게 왔다.
밤은 누구에게나 마음을 내려놓게 하는가?
청무실(靑霧室)이라!
'푸른 안개가 머물다 가는 집'이란 뜻인가,
소나무처럼 사는 이 산장의 밤은 늦게늦게 깊어갔다.
산에 와서 사는 법을 배운다.
몇권 꽂혀 있는 책 제목들을 훑어보면서 '산에서 사는 법'을 궁금해 한다.
우리가 만나는 자연은 모두 우리의 선생이다
잠시 '소나무처럼 사는 법'을 생각해 본다.
마음 가운데 남아있는 작은 돌덩어리 하나 내려놓아 본다.
살아온 날보다 어떻게 마무리할까를 걱정한다. 한철 잘 견뎌내면 또 한철이 온다.
"그래, 올 여름만 잘 견뎌내자."
집착하면 괴로워지는 우주의 법칙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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