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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산의 가을

이노두리 2006. 11. 3. 21:49
 

10월의 달력 한 장을 뜯어내니 11월이 나타났다.

立冬이다. 입동은 내게 항상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고 길을 나서라고 가르친다. 소위 겨울의 문턱에서 잠시 고개를 숙이라고 하는 듯이...

겨울이 오기 전에, 그리하여 눈이 오고  눈덮인 금오산을 물끄러미 바라보다  한해를 그냥 보내기라도 할 것만 같아 2006년  가을 금오산을 가슴에 담아두기 위하여 길을 나선다.

 

 

 

벌써 가을은 금오산 初入까지 내려와 숨을 고르고 있다.

올해는 예년에 없는 폭염때문에 단풍들도 꽤나 애를 먹었나 보다. 활활 타오른다는 표현은 맞지 않는다. 그냥  화장끼없는 여인의 얼굴이라고나 할까,

 

 

바위틈으로 쫄쫄 흐르는 약수에서 가을 냄새가 난다.  한여름의 땀을 식혀주던 시원함은 아니다.칠레산 포도주처럼 그렇게 차갑지 않다. 목줄기를  넘어가는 향이 그윽하고 뒷맛이 은은하기도 하다.

 

 

 

폭포로 가는 길목에는 울긋불긋 곱게 입은 여인네처럼 우리를 맞는 낙엽들도 있다. 낙엽은 누구를 애타게 기다리는 것은 아니지만,  연인이 오지 않는다고 원망하지도 않는다.  바람이 불면 이들도 옷깃을 세우고 총총걸음으로 산을 내려오겠지.

벌써 정상을 다녀오는 등산객들은 폭포앞에서 수건으로 땀을 훔치고, 등산화끈을 풀기도 하고, 가벼워진 배낭을 남은 의자에  내려놓기도 한다. 

 

건너편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을 바위틈에 세겨두기라도 하려는 듯, 금을 그어놓은 폭포 하나가 있고,  그 아래 무너질듯 암벽을 내려와   깊은 상념하나를  가지고 젊은 청년이 혼자 길을 묻고 있다.

 

 

 

 

이미 하오의 으스름이 내려오고 있어, 정상까지 오르진 못하더라도 깔딱고개까지 오르자고 아내에게 조르지만, 아니요......손을 내 젓는다.

 

혼자 하산길로 내빼던 아내는 잠시 걸음을 멈춰서고, 나를 기다리네.

 

 

 

역시 여자는 예쁜 것에는 약하다. 단풍 앞에서 포즈를 잡고 케메라 앵글에 걸리기도 하고, 다람쥐가  가을을 줍는것을 물끄러미 쳐다 보기도 했다.

 

 

 

개울도 조용조용 따라 내려 왔다.

아무도 보이지 않는 좁은 길에 들어서자 아내는 나를 한번 안아본다. 요즘 이게 유행이래요.

 

매표소 까지 내려오니 안녕히 가랍신다. 다시 겨울을 기다려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