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고향은 지심도 앞바다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지심도 앞바다가 빤히 보이는 장승포이다.
장승포는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 섬인 거제도의 동쪽 끝에 있다.
나는 장년이 되어 그 섬을 떠나기 전까지 줄곧 그 곳에서 자랐다. 내 안태고향인 셈이다.
장승포에는 등대가 두 개 있다. 빨간 등대, 하얀 등대. 그 양쪽 등대에서 출발하여 동그맣게 팔둘레로 그림을 그리면 손가락이 맞닿는 지점, 그 곳에 우리 집이 있었었다. 바로 바다가에 도로 하나가 자로 잰듯이 그어져 있고 그 길 건너에는 고향집이 바다 코앞에 있었었다.
‘오발탄’을 쓴 작가 이범선(李範宣)님이 그 곳 장승포에서 ‘갈매기’라는 작품을 썼다는 것도, 갈매기라는 작품에는 그 아름다운 항구가 나온다는 것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게다. 아니라 지금은 항구가 변하여 옛날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으므로 한번 다녀오고 실망할까 봐 자세히 소개할 때가 아니다. 다만 지금도 그 곳에 가면 그림같은 섬, 지심도가 떠있다. 섬은 항상 바다위에 떠 있어 가라앉지도 앉는다. 나는 외로울때는 그 섬을 떠올리고 외로움을 달랜다.
지난 여름이 끝나가고 가을이 들어설 무렵 우리 형제들은 선산에 벌초를 하려 고향을 다녀왔다. 해마다 형제간끼리 의논하여 날짜를 정하고 가는 벌초길이지만, 이번에는 좀 색달랐다. 서울에 계시는 중형은 부산으로 내려가셔 부산에서 홀로되신 큰형수와 사촌 형님댁 형수를 만나고 바로 손아래 남동생과 함께 거제도로 배를 타고 갈 테니, 나보고는 거제에서 합류하자 신다. 나는 꼬박꼬박 그 분부를 순종하기로 했다. 혼자만의 드라이브.
새벽같이 시동을 걸고 구미 톨게이트를 빠져 나갔다.
요즘은 네비게이션에 지령만 내리면 도시의 골목골목까지 턱하고 데려다 준다고, 영업용 택시기사도 온통 그 물건 자랑이지만, 나는 기계치이기도 하지만 너무 그것을 선전하는 통에 꼭 속고 말 것만 같아 아직도 그게 좋다는 말에 걸려들지를 않는다. 가끔씩 남의 차를 얻어 타고 갈때면 그 물건 때문에 ‘행로를 잘못 들었습니다’하는 기계음의 아가씨 목소리에 몇 번이나 놀랬던가, 나는 출발하기 전 쓱 훝어 본 ‘고속도로 안내 지도’를 믿고 달려가 보기로 한다. <경부고속도로>는 행하니 자주 달리는 길이니 묻지마 관광이고, <구마고속도로>로 들어서서 현풍, 창녕, 남지를 지나는 길도 문제가 없다. 예전같으면 서마산으로 빠져나가 국도를 통하여 진동, 고성, 통영을 거쳐 거제로 들어서면 될 터이나, 오늘은 새로운 모험을 해 보기로 한 것이다.
새로 생긴 대진고속도로에 연결된 진주 통영간 고속도로를 타 보자 싶었다. 지금은 <통영대전 중부고속도로>로 이름이 바뀌어 있었다. 칠서에서 빠짝 긴장하여 앞을 주시하고 칠원분기점에서 <남해 고속도로>에 올랐다. 군북, 지수 등 모르는 지명이 나오자 조금 낯설긴 해도 진주분기점에서 통영 방면에다 눈을 북박고 살펴 잘도 돌아 나왔다. 고지식쟁이 형님은 “해가 뜨거우니 일찍 도착하거라이” 하고 8시까지 도착하라고 당부하셨다. 복잡한 마산시를 통과하는 것도 그렇고, 국도로 고성까지 가는데는 온통 신호대가 가로 막아 서서 흐름을 방해 한다. 국도는 이제 영양가치가 좀 떨어지는 도로이다. 특히 돌아오는 길은 온통 막히고, 벌초하는 철엔 걱정이 앞섰던 것이 사실이다.
통영 톨게이트에다 고속도로의 상쾌한 아침을 풀어놓으니 거제 대교가 기다린 듯이 나타났다. 부산서 온 형제간들이 “왠 일로 이렇게 일찍 당도했느냐”“빨리 왔네”하고 한마디씩 던졌다. 나는 “고속도로만 쭉 타고 왔지예 그 길이 훨씬 수월하고 빠르데요” “한 삼십분은 단축된 것 같네요”하고 어깨를 한번 씩- 풀었다.
공동묘지에서 내려다 본 바다는 초가을 햇살이 따가운지 가슴을 열어놓고 있었다. 손에 잡힐 듯이 지심도가 놀고 있었다.
어린 풍금소리 울리는
남색 불빛의 방.
짜디 짜운 바깥이
철렁거리며 써래질하는
바닷말의 내음돋은 입술을 빨며
窓들보다 먼저 잠이 깨여
漁夫의 이름으로 詩를 쓰며
난데없이 내 젊은 날의 拙作詩가 생각났다. 초등학교 운동장도 내려다 보였다. 옛 친구들도 그리웠다. 옛날, 우리가 살던 바닷가의 집은 빚더미에 남의 손에 넘어 갔었었다 . 그리고는 고향을 떠났었지. 납작한 양철지붕의 고향집은 그 모양 그대로 있었다. 고향을 잃어버린 홧김에 돌아가신 부모님 생각에 눈물이 핑 돌았다. 포구는 그 앞으로 열발이나 매축되어 신축 건물들로 가득 채워졌고, 썰물때 종강대며 내가 놀던 갯벌은 흔적도 없었다. 낮설은 사람들이 물끄러미 우리 일행을 쳐다 본다. 이제 나를 알아보는 知己는 지심도만 남았을 뿐이었다.
최근에는 섬과 연결하여 관광여행이 유행이다. 언젠가 지심도로 가는 여행길이 페키지로 열린다면 동백꽃이 빠알같게 피는 계절에 八色鳥를 만나려 그 섬에 다시 한번 가고 싶다.
고향길 꿈은 밤마다 시린 사랑으로 내 곁으로 온다.
2006년 11월 초하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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