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로 읽는 글과 사진

처녀 투고-구미1대학신문-구미저널에 실린 글

이노두리 2006. 10. 29. 23:13
 

 

가을이면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최전방 군복무시절, 갑작스런 복통으로 의무지대로 실려 갔다. 병실 창밖에는 가을이 내려와 판을 치고 있었다. 스산한 바람에 낙엽이 후루룩후루룩 떨어져 내렸다. 가을이 나를 어디론가, 가을 깊은 곳으로 끌고 가는 것 같았다.

 그 감정을 참을 수 없어 종이에다 끄적거렸다. 다음날 의무지대에 근무하고 있던 동기 녀석에게 부탁하여 그것을 원고지에 옮겨 곧장 독서신문사에 보냈다. 글쓰기에 도전하였던 것이다. 나의 처녀투고(處女投稿)였다. 제목이 ‘입동(立冬)’이었지, 아마. ‘입동이다. 어쩌고저쩌고 ......’하지 않았을까. 가을을 외로워했는지, 겨울을 걱정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렇게 해서 나는 신문에 났던 것이다.

 몸이 정상으로 돌아오기도 전에 쫓기듯이 자부대로 돌아왔다. 뜻밖에 여러 통의 편지들이 나보다 먼저 부대에 와 있었다. 그 편지들은 대부분 ‘독서신문을 읽고 이 글을 씁니다.’ 로 시작되었다. 절절이 위로의 말이 담겨있었다.

 주로 마음씨 착한 처녀들이 편지의 주인공이었다. 한동안 나에게는 편지풍년이 들었으니 그들의 정성이 너무나 고마웠다. 처녀들은 추운 전방에서 고생하는 국군장병을 고마워하기보다 무턱대고 그리워하는 듯 했다. 순수하고 막연한 애정이 눈물겨웠다. 나도 가슴이 설레고 두근거렸다. 

 나는 부대에서 요즘말로 하자면 글짱이 되었다. 우리 부대에서 편지를 가장 많이 받는 사람으로 꼽혔고, 곧 이어 크리스마스 때 소포로 부쳐온 치약, 칫솔, 실 꾸러미, 바늘묶음들, 드로프스 등을 우리 소대 장병들이 골고루 나눠가졌다. 장병들의 답장도 부지런히 대필해주었다. 있는 머리, 없는 머리 다 짜내서 그녀들과 전방 소총수들과 연분이 맺어지기를 바라면서 열심히 편지를 썼다. 가슴이 가을바람처럼 맑고 저녁노을처럼 붉던 젊은 시절이었다.  

 그 해 부대 내무반은 페치카의 열기보다 처녀들의 편지로 인해 더욱 따뜻했다. 그래서인지 내무반에 진달래꽃이 피었다. 전방에 봄이 왔다고 그 분재 앞에서 소대원들은 너도 나도 활짝 웃으며 사진을 찍어서 고향 애인이나 위문편지를 보내준 처녀들에게 보냈다. 혹 나와 같은 추억을 갖고 계신 7080이 계시면 연락이 닿는 대로 저녁 한 끼, 두부김치에 파전으로, 동동주를 대접하고 싶다.

 세월이 바쁘게 흐르는 동안에도 내 안에서는 ‘언젠가는…….’ 하고 글쓰기를 별러왔던 것 같다. 올 가을에야 구미1대학 평생교육원 문예창작반에서 글쓰기를 공부하고 있다. 말하자면 이 글은 나의 또 다른 처녀작이다. 그 때는 최인호의 ‘별들의 고향’이 중앙일간지에 한참 연재되던 시절이었는데 내 글이 실렸던 독서신문은 지금 찾을 길이 없다. 찾을 수 있다면 ‘입동’의 전문을 꼭 읽어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