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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詩 감상----다시 살구꽃 필 때

이노두리 2006. 10. 30. 19:47
 

 다시 살구꽃 필 때


                             장 옥 관

  

  

  옛 외갓집 살구나무 꽃 필 때

  이모는 아궁이 속에서 굴러 나온

  달을 품고 잠이 들었다

  곤곤한 달빛 위로 흰 발목이 둥둥 떠다니며

  장독마다 차오르는 물소리를

  내 어린 풋잠은 엿들었던 것이니

  그런 날이면 한밤중에도

  오줌보가 탱탱하게 부풀어 올랐다

  문풍지를 스미는 희미한 향기

  먼 우주의 물고기가 안마당까지 몰려와

  하얗게 알을 슬어놓고 가기도 하는 것인데

  꽃잎 떨어진 자리마다 눈 맺혀

  돋아나는 초승달

  벌겋게 달아오른 외할머니의 아궁이가

  한밤 내내 식을 줄 몰랐다

  둥그스름 달집 딸아이의 몸속으로

  벌건 숯불은 다시 지펴져

  봄밤의 구들 뜨겁게 달구어낸다




2006년 가을이 오고 또 이상한 바람끼가 동하여, 處暑가 지난 밝은 날에 뭘할꼬 하다가

문예창작교실에서  장옥관 先生을 다시 만났다. 가을이란 이상한 냄새가 나는 계절인가 아님 해마다 바람처럼 왔다가 가는 그냥 한철인가 또  이 한철은 나에겐 몇 번이나 남았는가.


구미 공단에서의 인연, 그냥 새파랐던 청년부터 만났던가 몇 년이야 흘렀는지 모르지만, 언뜻 흰머리 몇가닥이 눈에 들어와 불쑥 잡은 손에게 “많이 늙었셨네요.” 했다.  큰 시인이 되셨다는 것도 이제사 알았고, 교수님이 되셨다는 것도 오늘에사 안 것이 미안해서일까 훌쩍 커버린 세상, 살아온 날보다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이 나이가 겸연쩍어서 불쑥 나온 말이니 詩人은 그렇게 섭섭해 하시지는 아니하실테지.


<내가 좋아하는 詩>를 골라 써라니 그동안 詩에게서  멀리 떠나 살아와서 왈꽐 눈물이 난다. 詩에게 미안해서,  詩는 돈이 안된다는 詩와 너무 오래 헤어져 있어 생각나는 詩가 없다. 그많이 외웠던 詩들도 외상값처럼 받을 수 없어 인터넷 NAVER에게, 장옥관 쳤더니 줄줄이 신상명세서야, 좋은 詩에도 올라있다. 바로 이거다 . 이번 기회에 이 詩나 한번 읽어보자. 맘에 들면, 또 시를 좋아하게 될지 누가 아나. <살구꽃 필 때>에 이어  <나무에 올라가 물고기를 구하다>와 <가오리 날아오르다>가 좋은 詩에 올라와 있어 언뜻 눈길이 간다. 

 

<다시 살구꽃 필 때>를 대하니 시골 외갓집이 떠오르고, 한밤중에  뒷간에서 어린 똥 누며 보던  외갓집 달빛도 생각나게  해서 좋다. 외할머니가, 손등에 깊은 주름이 한참이나 많으시던   우리 외할머니가 다시  얘기하시는 것 같아 몇 년전 외할머니 가신 길로 따라가신 울 엄매가 보고 싶어 또  눈물이 난다. 지천에 꽃잎이 하얗게  깔려 있는 고향 길,

 

詩는 이런 뜨거움으로 쓰는 걸까 한참을 읽어도 그냥 그 자리에 있다.   몇 밤을 지나고, 또 겨울이 오고 다시 봄이 오면,  살구꽃이 필 때쯤이면 살구씨만한 詩 한편이나 나는 쓸 수 있을까.

다시 장옥관 선생을 뵌 것은 우연인가 반갑고, 또 훌쩍 키 큰 나무를 본 것 같은 이 詩와의 만남은  세상의 만남이 정해 진 길인가 아니면 佛家에서 말하는 ‘인연이 있으면 다시 만나지요’인가 자뭇 궁금하여 다시 살구꽃 필때를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