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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동 기행----최참판댁과 평사리문학관을 보고

이노두리 2006. 10. 20. 22:18

 

문학기행을 처음 가는 맛이 어떨까? 가을아침 안개속을 빠져나와  하동으로 향했다.


‘간밤 아주늦게 하동에서 귀가했죠 하동안내는 부탁해 놓았어요 잘 다녀오세요 정연순’

선생님은 친절하시게도 휴대폰으로 메일을 보내오셨다. 구미1대학 문창반 동기생과 지인들이 동행하여 모두 31명이다. 같이 동행하시지 못하심을 이렇게라도 살피시다니 ....


 매년 열린다는 토지문학제는 어제까지 막을 내리고 그 많은 사람들과 내노라 하는 문인들이 모두들 빠져나갔다는 이곳 최참판댁을 감히 누가 안내해 줄 성 싶으랴. 하동시인 최영욱 씨를 만난 것은 정말이지 운수대통이었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아무렇게나 삐어져나온 머리칼에 누런 들판같은 얼굴하며, 꾸부정한 어깨에, 양손을 푹찌른 차림새가  바로 이동네 농사꾼같았다.

그러나 금방 그가 평사리 악양들을 굽이 살피며 내려다 보는 이곳 최참판댁을 지키는 거인(巨人)임을 알아채는 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거침없는 말솜씨며, ‘토지’에 대한 해박한 지식, 격식없는 주변머리는  바로 이곳 지리산 주봉에서 갈라져 나온 형제봉의 정기를 타고 나온 것일까,   그의 입에서 나오는 말들은  가늘다가도 어느 순간 강한 대바람소리같았다.

 

 그는 이곳 최참판댁을 조성하게 된 배경에서부터 산자락, 들판, 강과 대숲에서 이는 바람소리까지를 쉴새없이 쏟아내었을 뿐 아니라,  이곳 하동문인들과  섬진강과 지리산 줄기를 대상으로 작품을 쓴 문인들을 혀 끝에 올려 씹기도 하고, 입안에서 동그랗게 꽈리를 만들어 불어내기도 하였다. ‘칼의 노래’의 작가 김훈 선생님을 닮았다는 표현이 맞을게다. 섬진강 물을 내리기도 하고, 막기도 하는 용맹은 지리산 산자락을 닮아서일까, 때로는 들판을 아득하니 내려다 보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이곳 평사리에서는 지난 10월 14일부터 15일 일요일까지 토지문학제가 열렸다 한다. 우리 일행은 여름지난 바닷가에 온 사람처럼  한철 거쳐간 해변 풍경을 보았다.  비닐장막들도 철거되고 있었으며,  꾸경꾼들이 하루저녁 묵다 간 이부자리들을 치우고 있는 아낙들도 보였다.   그 틈에 이곳저곳 송긋거리는 우리들은 모래사장을 거닐며 이별하는 애인들처럼 때국때국 가을 태양을 막고 걸어다녔다.  그는 적절히 타이밍을 맞추어,  썰렁한 유머로 추임새를 하며 문인지망생들을  안채, 사랑채, 초당까지 안내했다. 나는 이곳저곳 디지털 카메라에 담느라 사실 ‘최참판댁’이 멀게 보였다. 그리고 평사리문학관앞에서는 물끼를 머금은 가을 대잎처럼 조금은 시들해지기도 하였다.


 박경리 선생님을 일곱 번이나 찾아가 이곳  하동 평사리에 문학관을 세우도록 허락을 받았다는 최영욱 시인은 촌놈(?)치고는 끈기가 있어 보였다. 이후 이곳에서 문학제가 열리자 ,박경리 선생님은 ‘하동 악양면 평사리. 이곳에 <토지>의 기둥을 세운 것은 무슨 까닭인가. 우연치고는 너무 신기하여’라 했다지 않는가.


 사실 나는 ‘토지’에 대하여 많이 알고 있지 못한 점이 무척 미안하였고, 평사리문학관에서의 박경리 선생님의 녹음육성과  일대기가 나올 때는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기분이었다.  장편을 싫어하였다기 보다는 게으름과 끈기부족으로 아예 장편소설은 잡지 못한 내 무지의 소치일게다. 귀밑까지 빨게졌다.  그 짧은 몇 시간 동안 토지의 배경이었던 이곳 평사리를, 최참판댁을 둘러볼 수 있었다는 것으로 ‘토지’를 다 알 수 없겠지, 나는 자신을 위로했다. 그래, ‘토지’ 읽기에 도전해 볼 생각이다.

 

 

 

 

 

누구나 새로운 흥분을 가지고 여행을 떠났다 많은 것을 가지고 또는 버리고 돌아 올 것이다. 그러나 오늘처럼 다시는 못 만날 사람을 두고 오는 기분으로 돌아오는 여행은 없었으리라. 마지막 인사를 하는 자리에서까지 그는 겸손했다. 고향을 사랑하고, 자연을 애지중지하고, 문학을 섬기며, 시를 쓰며, 들판처럼 곱게누워, 대바람소리를 들으며 사는 삶은 어떠할까, 정연순 선생님의 부탁으로 이루어진 일이지만, 귀한 안내에 머리숙여 깊이 감사의 인사를 드린다.


 돌아오는 차창밖으로 나는 열심히 가을을 쫓고 있었다.  섬진강에는 빈 배가 낙조를 이고 백사장에 누워 있었다.

문학기행으로 넓어진 마음을 담아 온 구미 문우들에게도 하늘이 주시는 문운(文運)이 터지기를  기대해 본다.


2006. 10. 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