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나에게 보내는 일기

46. 내 고향 장승포

이노두리 2018. 9. 19. 23:25

88일 수요일

 

내 고향은 장승포다.

고향을 떠난 사람은 누구나 고향을 그리워할 것이다.

내고향 남쪽바다 그 파란 물 눈에 보이네이은상 님의 가고파를 따라 부를 때마다 눈가엔 이슬이 맺히기도 한다.


요즘이야 교통도 좋아졌고, 하도 매스컴에서 ‘12이다, 뭐다 하여 떠들어대니 모두들 잘도 안다

거제도하면 외도’ ‘바람의 언덕’ ‘해금강다음으로 유명해진 곳이 지심도아니겠는가. 그 지심도를 매일 바라보고 살았다. 장승포는 지심도를 머금고 있는 포구다.

태어나서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줄곧 그 곳에서 살았다. 지금은 포구 일부가 매축되어 내가 태어나 자랐던 우리집은 뒷줄로 밀렸지만,

사십년 전만 해도 갯벌에 밀물 썰물이 어김없이 들어왔다 나갔다 하는 바닷가 맞닿은 해변에서 살았다.

 

포구는 정말 아름답다.

빨간 등대 흰 등대가 이마를 맞대고 있다

반달처럼 생긴 포구 중앙에서 어느 쪽으로 가더라도 30분이면 등대까지 당도할 수 있다. 포물선 정 중앙인 지점에 우리집이 있었다. 장승포 3구였다.

더구나 달빛이 내려 앉는 밤이면 해면은 호수같다

미끄러지듯 달이 내려와 내앞으로 달려오고 구름이 살짝 달을 가리기라도 하면 울음소리 하나 낼 수 없다. 그 고요는 심장을 멎게 할 수도 있다.


내 청춘의 미숙함은 그 곳에 멈춘 채 외지로 나가 본 적이 없다. 친구들과의 밤 뱃놀이는 환상적이었다. 목선을 훔쳐 타고 노없이 나무 판데기(?)로 뗏목처럼  지끄덕~지그덕~물결을 저어 포구 한 가운데로 내달아 산타루치아를 목청 껏 불러 제키던 그 맛은 아무도 모르리라.

 

봄이면, 벚꽃이 바람에 날리는 언덕에서 붉디 붉은 햇살이 내려와 바다와 함께 춤을 춘다

도시로, 더 먼 나의 미래를 향하여 가는 내 마음을 잡을 수가 없었다. 중학교 입학 시험에서 처음으로 고배를 맛 보았고, 고등학교 진학시험에서의 낙방은 나를 포구에 가두었으며, 대학교 시험에서의 좌절은 결국 내 청춘을 도시의 유랑객으로 만들어 버렸다.

 

      

그 때 지은 , <봄바다>를 다시 읽어 본다. ( 다행히 옛날 노트에 적혀 있었다)

 

어린 풍금소리 울리는

남색 불빛의 방

 

짜디짜운 바같이

청렁거리며 써래질하는

바닷말의 내음 돋은 입술을 빨며

()들보다 먼저 잠이 깨여

어부의 이름으로 시를 쓰며

 

수면의 무명 저고리 벗긴

동화의 가까운 어항속에서

몇 개의 비늘들은 흘러내려

밤바람은 말갛고,

눈두덩 새파란 연분을 맺고

부채춤같이 나부껴야 할

여명(黎明)이 썰렁이어

하늘과 이마를 포개야 하는

아침은 얼마나 젊잖은가

 

웃음바른 동쪽

꽃이파리 코를 골며 돌아눕는

사지(四肢)는 성성한 물결소리로

푸드득 푸드득 날개를 치고

 

덧니돋은 돛대들 꿈꾸는

물빛고인 등불들은

싱싱한 바위돌 귓바퀴에 멈춰

정수(淨水)를 실어내는

밤바다 시린 사랑으로

아침 햇살을 머금고 있다.

 

 

19736월호 <샘터>, 샘터가족 시단에 실린 작품이다.

 

      

40년도 지난 일이다. 지금 생각해보면, 언어의 나열이다.

<샘터>, 19704월에 창간된 월간 교양 잡지이며 B6판의 크기로 뚜껍지 아니하여 즐겨 읽었던 기억이 있다. 현재까지도 꾸준히 발행되고 있는지?

 

 

장승포에 다시 가보고 싶다. 강산이 네 번이나 변했다.

함께 뛰어놀던 고향, 친구들도 보고 싶다.

가고파노래를 불러본다.

꿈엔들 잊으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지금도 그 물새들 날으리~ 가고파라 가고파~

그 물새 그 동무들 고향에 다 있는데/ 나는 왜 어있다가 떠~나 살게 되었는고/ 온갖 것 다 뿌리치고~돌아갈까 돌아가~/가서 한데 얼려 옛날같이 살~고 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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