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기

29. 소풍가는 날

이노두리 2018. 9. 6. 21:25

722일 일요일

 

천성병 詩人<歸天>에서  노래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새벽빛 와 닿으면 스러지는

이슬 더불어 손에 손을 잡고 

.......................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오늘은 소풍가는 날이다. 아침일찍부터 준비물을 보따리보따리 쌌다. 오늘도 열기가 대단했다. 땀을 삐죽삐죽 흘리며 준비목록을 체크해  캐리어에 담아본다.

 

-세면도구----손가방(전기면도기, , 치약, 칫솔, 샘플용 스킨

-----------비타민, 혈압약, 철분제-----6일분

-노트북-----별도 가방

-충전기------- 1

-예비밧테리--1

-타올----------2

-런닝, 팬츠3

-양말 3, 손수건 2

-슬리퍼-------- 1

-반바지--------- 1

-여름용 티----- 2

-------------- 3 (‘당신의 책을 가져라)

 

-아내는 별도로 여행용 가방 하나에 소지품을 챙기고(내용물 모름)

-여름용 이불 2, 베게 2,

-밑반찬열무김치, 소고기장조림, 깻잎장아치, 풋고추 10 개와 막장,

-과일-바나나 1송이, 복숭아 6 개, 요플레 4통, 1회용 쌀국수 2 개

 

       

SUV 차량 뒷드렁크에 짐이 잔득 실렸다.

일요 불사를 보고, 11시 반에 구미를 출발하였다.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오는 길은 일요일이라 대체로 순탄하였다. 신탄진휴게소에 들러 아내가 뽑아준 냉커피를 마시면서 다시 엑셀레이터를 밟았다. 바깥 온도는 40도를 가리키고 있었다. 올들어 가장 더운 날씨라 한다

소풍 장소는 국립암센터, 서울 근교에 오니 역시 도로는 막혔다. 오후 4시 반에야 겨우 도착하였다. 구미에서 일산까지 290km 거리를 5시간만에 주파했다.

입원 수속을 밟고, 병동으로 올라왔다. 1016호실 5인실이다.

몇 번이나 다녀온 소풍장소처럼 익숙하였다. 그 옛날 초등학교 시절, 소풍은 언제나 똑같은 장소로 갔었다

학년은 한계단씩 올라가고, 선생님은 바뀌었어도 소풍 장소는 허구헌날 그 장소여서 아주 익숙해져 있었다. 어머니의 손에 이끌여 갔던 저학년때의 소풍은 푸르른 잔디위를 달렸던 기억과, 혼자 소풍 가방을 메고 갔던 고학년때의 소풍은 친구들과 멋들어지게 놀았던 추억이 어슴푸레 남아 있다.

이순신장군 첫번 대승첩기념동상이 세워져 있던 바닷가 그 곳, 시골 소풍은 정말 멋진 장소였었다. 고향을 떠나고 몇 년 후 그곳을 가보니 대우조선소가 들어서 그 흔적은 찾아볼 수 없었다. 학교에서 그곳까지는 십 리나 되었을까?

여보, 고마워불쑥 내 어깨를 만지며 하는 아내의 말이었다.

"뭐가?...“멋적었다.  ”매번 먼거리까지 손수 운전하여 병원으로 데려다주고 데려가고...“

통증 때문에 대중교통으로 움직이는 것이 무리였으므로 자가용으로 병원까지 왕복해서 다녀야 하는 것이 마음에 내내 걸렸던 모양이다.

歸天소풍가는 날이 생각났다. 아내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제발 안 왔으면 좋겠어...“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체중을 재고, 침대에 누워보는 아내, 소풍이 그녀를 피곤하게 하였나 보다. 나도 보호자용 보조 의자를 펴고 잠시 눈을 붙였다. 옆자리의 간병인이 저 노을 좀봐요하는 소리에 놀라 눈을 떴다. 창밖을 보니 하늘이 붉게 타오르고 있었다.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더라고 말하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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