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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추꼭지를 따며

일요일 할 일 없어 고추 꼭지를 딴다 열 근이나 넘는 고추 자루를 풀고 쏟아놓으면 고추는 서서 제 발로 걸어 나온다 마스크 쓰고 장갑으로 중무장한 아내, 고추 꼭지는 남자가 따는 것이 아니라고 손을 내젓지만 이쁘장한 고추가 불쌍하여 남자인 내가 달라든다 고추꼭지는 이렇게 따는 거야 시범을 보이는 아내야, 고추는 내가 더 잘 알지 남자인 내가 더 알지 퍼질고 앉아 고추를 잡는다 붉은 고추 꼭따리를 따니 고추씨가 나온다 색깔이 노랗구나 울 엄마 속을 닮았구나 울 엄마는 고추를 많이 낳았단다 딸 하나 낳으면 쫓겨난다던 옛날 종갓집, 고추 하나만 낳아서 길러주면 장땡인줄 알았는데 줄줄이 고추라서 밥상 앞에는 고추 반찬만 있었단다 섧디 섧은 고추잎 무침에, 맨밥 말아 풋고추도 된장에 찍어먹었단다 해마다 고추 꼭지..

다시 읽는 시 2006.1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