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력으로 50번째 맞는 아내의 생일을 축하한다.
진심으로 기뻐하는 아내를 보면서, 오늘 문득 나이의 의미를 되물어본다.
여자에게 나이란 어떠한가, 사십을 훌쩍 지나 지천명의 나이인 오십줄에 든다는 것이 새로운 의미가 있을까 잠시 생각한다. 세월이 하늘을 알 만큼 지나갔다는 말인가. 지천명(知天命),하늘의 뜻을 아는 나이와 여자의 생리적인 몸은 또 무엇인가.
스물셋에 시집와서 아들,딸 연년생으로 낳고 시어머니 모시고 근 20년을 함께 한 집에서 살았다는 것과, 만1년동안 두문불출하고 누워계셨던 그 시어머니의 병수발을 혼자 감당해 낸 일이 갑짜기 생각나 , 함께 해온 스무일곱해가 도막내어 떠오르고, 평탄치 만은 않은 삶의 고객마루에 서서 옛일도 생각는다. 원 세상에 이런 팔불출도 보았나, 마누라 자랑이라니!
아니다. 오늘은 약간은 모자라는 삶을 살아온 듯한 아내의 푼수기에 대하여 한마디 하고 지나가야겠기에 필을 든다.
오늘 생일 축하연은 그녀가 평소 자주 만나서 '하하호호' 즐겨워 하는 친구들이 아니라, 가끔씩 그녀의 가게에 들러 살아가는 일상을 얘기하고 , 그 일상의 즐거움보다는 슬픔을 함께 들어주고, 소주잔에다 눈물을 보태어 함께 마시는 아우들이 있단다. '일송정'이란 음식점에서 일하는 '나영이', 윗층 '구일막창'집 '화영이', '태평양 화장품' 외판원으로 일주일에 한두번 들린다는 '명희' 이 셋이가 언니 생일을 알아버렸다는 이유로 오늘 마련한 잔치렸다.
마침 대학 4학년 졸업반인 아들 놈이 모처럼 휴일이라 집에 들렸다가 이 행사에 끼이게 되었다. 아들놈은 모처럼의 이벤트에 신이 났는지 아니면 제 엄마 비위 맞추느라 그러는지 연신 바쁘다. "나영이 이모도 좋구요, 화영이 이모 감사하고요" "글쎄 잘 모르겠습니다 . 누구" 하니까 "아 명희" 하고 옆자리의 명희가 자기 소개를 하자 "명희 이모도 함께 이렇게 오셔서 감싸함니..."하고 분위기를 잡아 나가는 게 아닌가.
한순배의 술잔이 돌고나서 "우리 엄마는요 푼수고요, 난 우리 엄마가 완벽주의 우리 아버지 보다 좋습니다."하고 좌중을 향하여 말을 하는게 아닌가, 너무나 그침없이 해 댄 말이라 나는 그 말의 의미를 곱씹어 보지도 못했다. 그때 느닷없이 화영이 이모가 "그래 , 윤태 네말이 맞다. 조금 푼수기 있는게 좋다."하고 맞장구를 치는게 아닌가, 갑자기 완벽주의가 되어 버린 나의 입이 다물려 졌다. 그 다음 일들은 내게는 즐거움이 되지 못했다. 푼수기 있다는 엄마는 아들 잔도 받고, 아우들 잔도 받으며, 생일 축하엔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그래 오십줄에 들어서서 좋구나 좋구나하고 남들을 편하게 하는 것이 푼수기란 말인가, 약간 모자란 듯한 웃음, 밝은 화장기, 아무렇게나 걸치고 다니는 옷가지 등등 이것이 내 편한대로보다는 남에게 편해 보이도록 하고 사는 삶이 푼수인가, 그래 약간 모자란 듯한 것.
지나간 날들을 회상해 보니, 어머니는 내게언제나 만만한 상대였었다. 항상 내게는 긍정적이셨고, 아들이 우선이었으며, 괴롭고 힘든 일도 아들앞에서는 내색이 없으셨다. 내 아들이 제엄마에게서 그걸 보고 있는 걸까?
이제 사회 초년생이 될 아들 녀석에게 한방 얻어 맞고 보니 이제껏 끄떡없이 , 당당하게, 이겨야만 직성이 풀리는 성격인 나, 곧이곧대로 살아온 50여년의 세월이 파로라마처럼 되감겨왔다. 저만한 나이에 이르렀을 때, 나는 사회 생활을 시작했더랬다. ' 일광이라는 조그마한 어촌의, 그땐 이름있었던 '동성판유리'라는 공장에 취직되어 출퇴근했던 기억이 불판위의 지글거리는 냄새처럼 피어 올랐다. 맞선을 보고 채 한달도 되지 않아 우리는 서둘러 결혼을 했고, 직장이 구미로 옮겨 오는 바람에 8평짜리 전셋집에서 신혼 살림을 차렸던 일, 사원 아파트로 옮겨 옹기종기 아들 딸을 낳았던 일들이 잠시 벌겋게 나를 달구어내었다. 그 아들이 이제 장년으로 자라나 부모곁을 떠나려하는 일이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내가 30여년전 그랬던 것처럼...
그런데 느닷없이 푼수라니...그것도 제 엄마를,
2프로 모자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니 , 아들이 벌써 세상을 나보다 멀리 내다 보고 있단 말인가.
잠시 후 대화는 대부분 그녀들의 살아가는 방식에 대한 얘기로 전개되어갔는데, 그런 언니가 좋아서 다들 모였단다. 아픔을 알아주고, 때로는 챙겨주고, 한번씩은 같이 울어주고...그래야 한단다. 평소 남들을 가장 잘 안다고 자부해 온 내 생활방식의 어떤 격식이 구겨지고, 그 일부가 무너지면서 음식맛도 내게는 달게 느껴지지 않는 것이었다.
거슬러올라가 내가 살아온 삶이 그렇게 완벽하였는가를 오늘에사 되돌아본다. 일을 처리할 때의 준비성, 남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투쟁, 열정적으로 매사를 처리해온 내 삶이 오직 내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특히 아들의 눈에 완벽주의로 비쳐져 왔는가, 다시 한번 뒤돌아본다.
설령 그렇다 하더래도 지금까지 잘도 참아 왔고, 잘도 용서해 왔지 않았던가, 나름대로 둥글게,모나지 않게, 비굴하지 않게 살아 온 30여년의 방식을 이제와 바꾸는 것이 쉬운 일일까? 남자로서 , 가장으로서, 애비로서의 강인함을 강조해 온 것이 아들의 눈에는 완벽을 앞세우는 삶으로 비쳐져 왔음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약간은 모자란 듯 하고, 약간은 양보하고, 약간은 헤헤거리고, 약간은 타협하고, 약간은 상대방의 입장을 고려하는 삶, 그 위에 '에미의 마음' ,'진정으로 자식에게 져 주는 엄마의 삶'으로 사는 것도 괜찮을 게다.
아들의 말이 아니래도, 아내의 50회 생일날에 '푼수기있는 사람'이 되지 못한 내가 갑짜기 미워지는 것은 왜, 왜일까? 이제부터라도 무엇이 가치있고, 남은 생을 어떻게 마감할 것인가를 조금씩 알아가기만 하여도 괜찮을까, 내 자신에게 되물어본다.
2006. 겨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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