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20일 월요일
주여, 시간이 되었습니다. 여름은 아주 위대했습니다.
당신의 그림자를 해시계 위에 던지시고,
평원에는 바람을 불어주소서,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녁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라이너 마리아 릴케’의 ‘가을날’ 詩를 읽는다.
쪽잠을 자고 일어나 여기가 병원이라는 사실을 깨닫고 잠시 멍하기도 했다.
오전 9시가 넘었는데도 CT촬영을 하려 가자는 기별이 없어 간호사실에 가서 재촉해 보았다.
‘우는 아기에게 젖 준다지요’ 잠시 후 간호사가 와서 CT촬영하려 가야 한다면서 준비하라고 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으로 함께 내려왔다. 잠시 후 아내는 CT촬영을 하려 들어가고, 2층 영상촬영실앞에서 기다렸다.
기다리는 동안, <내가 사랑하는 시> 책 중에서 골라 읽은 시가 하필이면 ‘가을날’이었다.
학창시절에 읽은 시, ‘가을날’이 우연히 펼쳐진 것이었다.시를 읽으니 달콤한 냄새가 입안에서 감돌았다.
병실에 돌아와서도 한참 동안 기다려도 항암 여부가 결정되지 않았다.
몇 번에 걸쳐 간호사실에 들락날락 한 후, 차용준 의사선생님의 오더가 있었다면서 오후 1시가 넘어 항암이 결정되었다.
오른쪽 가슴 포트를 통해 수액, 부작용 방지약이 방울방울 뚝뚝 떨어져 들어가기 시작했다.
수액 걸대에 주사액이 걸리기 시작하면 아내는 긴장하게 된다. Cisplatin 항암제와 5-FU 항암제가 연이어 투입되었다.
오후 4시가 넘어서 였다. 이제부터는 24시간을 계속하여 몸에서 암세포와 정상세포가 함께 싸울 것이다.
주치의 선생님은 외래 진료가 많아 오늘은 만나 뵐 수 없다고 한다.
내일 오전 회진 시간에 지난번 CT촬영 결과와 이번 촬영 결과를 비교하여 설명해 주시기를 수간호사님에게 부탁하였다.
이번이 마지막 항암치료이면 얼마나 좋을까? 빨리 가을이 왔으면 좋겠다.
‘마지막 열매들을 가득가득 하도록 명해주시옵고,
그들에게 이틀만 더 남녁의 낮을 주시어,
무르익는 것을 재촉하시고
무거워가는 포도에 마지막 달콤함을 넣어주소서’
오늘 만보걷기 10,905 걸음,
밤 10시가 가까워지고 있다. 또 잠을 청해 보아야겠다. 내일은 태풍 ‘솔릭’이 북상한다고 한다.
내일 오후에는 구미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 모레 수요일에 'O금속(주)'에 미팅이 잡혀 있다.
ISO 13485 인증과 GMP 적합인정에 대한 컨설팅 스케쥴을 협의할 예정이다.
모레에는 '㈜CM'의 품질혁신 컨설팅 스케쥴이 잡혀 있어 다녀와야 겠다. 목요일 밤에야 일산으로 올라올 수 있다. 그동안 아내 혼자 병원에서 있어야 겠기에 서울에 사는 정하처제에게 전화를 걸어본다.
아내는 동생이 형편되는 대로 병원에 와서 잠깐이라도 함께 지냈으면 하는 눈치다. 처제는 다시 전화하겠다고 한단다.
오늘은 하루 종일 날씨가 흐리다.
*<내가 사랑하는 시> 최영미 지음, 해냄,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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