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기

35. 집으로 돌아오니 평안하다

이노두리 2018. 9. 11. 22:17

 

 

728일 토요일

 

엊저녁 일찍 잠들더니 아침엔 일찍 일어난 것 같다. 화분에 물도 주고 꽃들에게도 생기(生氣)를 찾아주었다.

아점(아침과 점심)을 먹고 나서 가방을 풀어헤치고 짐들을 정리하였다. 가져갔던 책들과 옷가지와 잡동사니를 정리하면서 잠시나마 삶을 정리해 본다. 누구나 한번씩 짐들을 정리하면서 살 필요가 있다.

묵은 짐꾸러미, 삶의 찌꺼기가 군데군데 모이다 보니 건강도 나빠지고 정신도 흐릿해지고 생기(生氣)도 떨어지는 게 아니겠는가.

 

집으로 돌아오니 좋다.

인터넷을 뒤져 그동안 처리하지 못했던 세금계산서도 출력하고, ‘산업혁신운동 유공자포상에 대한 파일도 인쇄하여 둔다. 컨설턴트 유공자 포상 공적조서88일까지 제출하라고 되어 있다.

, 크게 잘 하지도 못했는데...

 

지인 無空NAVER BAND에 올리는 도타운 사람들과 함께 가는 세상에서 올려놓은 “Gabriel’s  Oboe” 음악을 듣는다. 크게 듣는다. 나무로 만든 스피커에 스마트폰을 끼우면 이 가득찬다. <나무로 만든 스피커>는 금오산 올레길을 돌다 어둠속에서 한손이 장애를 입은 청년이 만들어 팔기에 만원주고 샀다.

영화 음악 ‘The Mission’OST “가브리엘 오보에가 감미롭다. 無空은 거의 매일 BAND에 글과 음악을 포스팅하는 정말 부지런한 사람이다. 배울 점이 많다.

 

어디 우산 놓고 오듯

어디 나를 놓고 오지도 못하고

이 고생이구나

 

 

나를 떠나면

두루 하늘이고

사랑이고

자유인 것을

 

정현종 어디 우산 놓고 오듯도 올려져 있다.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읽어본다. 지금의 나에게 딱 맞는 . 고맙다. 오후의 따거운 햇살도 고맙고, 다시 잠든 아내도 고맙고, 음악을 올려준 '無空' 님도 고맙다.

 

 

아직도 세상은 살만 하다는 생각이 든다. 혼자인 이 공간이 평안하다. 약간은 어깨가 뻐근하고 목을 돌려보니 왼쪽 목이 뚜둑~하고 소리가 나지만 괜찮다. 행복은 전염된다고 했다. 다른 누군가를 행복하게 해주고 그의 행복한 모습을 보는 것은 자신의 배를 쓰다듬는 것보다 더 많은 걸 우리에게 준다고 했다

 

 

흐드러지게 낮잠을 자는 아내를 깨워 걷기운동에 나선다.

햇볕이 강하다고 멈추면 되겠는가, 멈추면 죽는다고 설득한다.

 

걸으면 좋은 이유

-걸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걸으면 스트레스 해소에 좋다.

-걸으면 참을성이 길러진다.

-걸으면 에너지가 충전된다.

-걸으면 인격이 향상된다.

 

오후 햇살을 받으려 집을 나선다.

당신은 힘도 좋슈아내가 하는 말이다. 그렇게  차운전을 몇 시간씩이나 하고 온 영감이 쉬지도 않고 운동가자고 한 말을 빗대어 하는 말이다.  싫다는 말인가? 좋다는 말인가?

일주일만에 오르는 금오산 자연학습원길에는 사람들 그림자도 없다. 목이 타도록 덥다.

오리 14마리가 물가에서 한가로이 놀고 있다. 오리 엄마와 오리 아기들이다.사진으로 담아보기도 한다.

 

산비둘기 한쌍이 푸드덕하고 놀라 앞길을 막는다. 사랑을 나누다 들킨 모양인가.

마가목을 지나, 귀룽나무를 지나, 쥐똥나무를 본다달뿌리풀도 어긋나게 쳐다본다.

땀은 이마 위에서 흘러 내리지만 숲길은 쥐죽은 듯 적막하다.

병동복도 돌기로 단련되어서 그렇게 힘들지 않는다면서 아내는 잘도 걷는다. 소나기가 오려나?

오후 6시가 채 되지 않았는데도 하늘이 어둑어둑해 온다.

 

하루만보 걷기는 8,581걸음, 힘들어도 걷는 습관이 몸에 베이게되면 건강한 몸을 다시 갖게 될 것이다.

집으로 돌아오니 마음이 평안하다. 이대로 쭉~갔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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