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기

39. 암치료엔 웃음이 최고다

이노두리 2018. 9. 13. 19:12

81일 수요일

 

 

아내의 배아픔이 조금은 나아졌다 한다. 집으로 돌아온 지 닷새째니까 조금씩 적응되어 가는 것 같다. 다만 입술끝이 따금거리고 입술 아픔은 여전하다 한다.

병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입술 통증과 싸움을 벌인다는 말이 더 알맞은 표현일테다. 일주일이 지나야 입맛도 조금 돌아온다 한다. 정상세포까지 괴롭히는 항암화학치료를 언제까지 하여야 하나, 가끔씩 짜증이다.

폭염보다 더 무서운 고통을 해결하는 방법은 없을까.

 

수요일, 구미 2공단 황상동에 있는 ‘M테크를 방문했다.

일자리 창출과제 지도업체다. 여름휴가도 가지 못하고 무더위에도 땀을 뻘뻘 흘리며 일하고 있는 중소기업의 실정이다.

휴가는 다녀오셨나요?” 남사장님은 휴가계획이 없고 직원들은 돌아가면서 며칠씩 쉰다고 한다.

작업표준 등 문서 개정 지도를 하고, 지도일지를 정리했다.

이노솔루션컨설팅의 안대표님과 함께 봉곡동 하루면옥에서 물냉면 한그릇씩을 했다. 물냉면을 훌훌 잡수시며 더위를 식히는 공사장 인부들도 옆자리에 보인다. 냉면집을 나오니 IS 무장대원처럼 복장을 한 공사장 인부들이 이 폭염에도 붕붕거리며 일을 하고 있다. 포크레인이 파고 있는 땅속에서 열기가 한묶음씩 올라오고 있었다.

 

이번 주 토요일에 동해안으로 피서라도 다녀올까?” 할머니의 제안에 금방 부산해졌다. “어디로 가요?” “봉평해수욕장

유나가 어린이집 방학으로 심심하다 하여 이번 토요일에 바닷가에 가서 텐트를 치고 하루 지내다 오려고 결정했다.

봉평해수욕장은 몇 년전 대구에 사는 말순 처제와 함께 훌쩍 다녀온 적이 있다. 아담하고 조용한 해변이다. 동해안을 따라 울진방향으로 쭉 올라가다가 죽변항 조금 못 미친 곳에 있다.

 

 

 

창고에서 버너, 코펠도 꺼냈다. 묵어있는 먼지와 냄새를 제거하기 위해 물에 행구어내고 햇볕에 말렸다. 햇살이 뜨겁다.

그 옛날 추억도 꺼집어 내었다. 등산용 배낭 속에도 추억이 가득 담겨져 있다.

몇 년전 쯤일까, 아들, 딸이 어렸을 때 해마다 하기휴가를 떠났었다. 직장 동료들과의 길떠나기는 동해안을 따라 포항 칠포해수욕장에서부터 고성 통일전망대까지, 달리고 또 달렸었다. 간포해수욕장, 칠포해수욕장, 장사해수욕장, 화진해수욕장, 월포해수욕장대진해수욕장이 주무대였다.

 ‘직장 하기휴양소가 해마다 옮겨가며 차려졌었기 때문이었다. 텐트도 꺼냈다. 해마다 사 두었던 텐트들, 애들 커가는 햇수만큼 늘어났던 그 놈들, 한여름밤을 품고 잠들어 있는 텐트들 중 두놈을 깨웠다

 

 

할머니, 보고 싶었어요유나가 엄마와 함께 왔다. 오자마자 집안은 금방 난장판이 된다. 탁자에 올라가고, 운동기구에 메달리고, 휴지를 꺼내어 던지고, 식탁위에 올라가 노래를 부르고...

저녁을 함께 먹고 유나와 함께 금오산올레길(금오지 주변을 따라 2.4km 조성된 수변 산책로)을 걷기 위하여 집을 나섰다유나와 금오산올레길 한 바뀌를 돈다는 것은 애시당초 무리다.

킥보드를 타고 쌩쌩 달려간다.

유나 외할아버지지가 사다준 선물이다. 중국말로 킥보드를 화반처(滑板車)’라고 하는데, 유나는 늘상 화반처 타령이다. 작년에 사다 준 것인데 네 살인 지금은 꽤 익숙해져 잘 탄다.  

배꼽마당까지 갔다가 되돌아 나왔다. 반 바뀌도 못 돈 셈이다. 유나가 힘들었는지 칭얼대는 바람에 할머니가 업었다가 할아버지 등에도 업혔다. 이제는 제법 무게가 나간다.

100일 갓 지나 중국에서 한국으로 온 유나, 주먹만 하던 아기가 어느새 훌쩍 커버린 것이다.

 

유나는  할머니집에서 잠 자겠다면서 다시 왔다. 살림이 한 가득이다. 아기 이불에, 아기 베개에, 레고 상자와 콩순이까지 장난감 한 소꾸리를 들고 왔다. 유나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래 그래, 할머니하고 자자” 그 소리에 너무 좋아한다.

엄마 가세요, 엄마 빠이빠이~” 유나 엄마는 밤길을 걸어 유유히 돌아갔다.

할머니 좋아~” 할머니가 웃는다.

유나는 이마도 예쁘고, 눈도 예쁘고, 입도 예쁘고 안 예쁜 곳이 없다.”

예쁜이, 똑똑이, 공주유나가 할머니 말을 맞받으며 꺄르르 웃는다. 할머니가 지어준 유나의 별명이다.

 

유나의 웃음이 할머니 치료 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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