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 불교 성지순례 여행기

인도네팔 불교성지순례-여행 6일차-쿠시나가르에서 룸비니(네팔)로

이노두리 2025. 1. 30. 12:57

6일차----1117() -쿠시나가르에서 룸비니(네팔)

-03:30 모닝콜, 04:15 아침 공양, 05:00 호텔 출발이다.

 

안개속으로 천천히 나아간다. 룸비니로 가는 길이다.

룸비니까지는 약 4시간 소요된다고 한다.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 동산은 인도-네팔 국경을 넘어가야 한다. 또 한번의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선다. 인도-네팔 나라간의 국경을 넘는 일은 어떨까? 유럽여행에서 프랑스에서 스위스로,

스위스에서 이탈리아 국경을 넘는 것처럼 버스를 타고 스쳐 지나갈까? 아니다. 출입국관리가 꽤 까다롭고 철저했다.

 

우리 일행은 서둘러 달려왔기 때문에 운좋게도 쉽고 빨리 출입국 절차를 마칠 수 있었다. 절차를 밟는 곳의 내부

촬영은 엄격히 금지되고 있었다. 가이드는 주의! 주의를 몇 번이나 당부하였다.

인도-네팔 국경을 넘는 일은 이번 순례여행 중에서 가장 드라마틱한 일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생()에서 사()로 넘어가는 꿈처럼 재미있었다. 살아 생전에 네팔로 가 볼 수 있다니! 꿈처럼 느껴졌다. 부처님의 탄생지를 찾아가는 것이 사실인가? 인도인, 네팔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걸어서 넘어가고 걸어서 넘어오고 있었다.

 

 

1120분에 인도-네팔 국경을 통과하여 12시경에 룸비니 CRYSTAL GARDEN(호텔)에 도착하였다. 네팔로 넘어오니 한국과의 시차는 3시간 15분으로 바뀐다 한식을 포함한 호텔식으로 중식을 마쳤다.

 

 

점심식사 후에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동산으로 향했다. 룸비니 동산은 잘 정리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잘 아시다시피 네팔은 희말라야산맥 남쪽에 있는 나라다. 세계에서 8,000m 이상의 높은 산이 19개가 있는데, 이 가운데 14개가 네팔에 속한다고 한다. 네팔은 인구 중에 80%가 흰두교 신자이면서 불교도라고 한다. 불교는 티베트불교 영향을 받아 대부분 밀교의 사상을 가지고 있다 한다.

 

 

 

2,600여년전, 이 곳 룸비니 동산에서 태어나신 싯달타 태자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이었다. 신도 아니요, 특별한 존재도 아니며, 보통사람처럼 태어난 분이시다. -인간, 석가모니를 만나다, 혜정 지음에서 인용-

부처님의 옛 흔적이 보존된 마야대비 사원안에서 머리를 숙이고 서원을 하기도 하였다.

오늘이 불기 25681117, 때마침 자성일(일요일)이라 룸비니 동산에서 자성일 불사를 봉행하였다. 헤진정사님께서는 부처님께서 이 땅에 태어나심에 대하여 법문을 하셨다. 뜻깊은 일이었다.

 

 

 

구룽못과 아소카왕 석주도 둘러보았다. 다시 보아도 룸비니는 아름답다.

아소카왕은 국가 통치를 불교 다스림에 따라 다스린 왕이었다 한다. B.C 239년 아소카왕은 룸비니를 방문한 기념으로 큰돌기둥을 세웠다 한다. 석주 상단에는 말 모양이 만들어져 있는데, 높이 7.2m라 한다.

 

 

나는 어디에서 태어났으며, 어떻게 살아왔으며, 어디로 갈 것인가? 잠깐동안 평생을 살아오면서 보낸 나의 잘못을 참회한다. 남은 여생을 어떻게 살다 갈 것인가? “내가 좋은 사람이 되어 내게 좋은 사람이 오도록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호텔로 이동하여 17:00시에 석식을 먹고는 일찍 배정된 ROOM으로 왔다. 샤워를 하려 하였으나 온수가 나오지 않았다. 로비로 가는 길에 호텔 근무자를 만나 도움을 청했다. 온수가 나오는 것을 확인하고 나니 갑자기 정전이 되었다. 웅성이는 소리가 들리더니 잠잠해졌다. 금방 불은 들어왔다. 전기 사정이 좋지 못하구나 하고 생각했다. 갑자기 별이 보고 싶어졌다. 네팔에는 별이 총총하다지...

맞은편 호텔 건물 위로 달이 보였다. 오늘이 보름인가? 달이 높이 떠 있다. 바깥 도로까지 나가 보았다. 오토릭샤 한 대가 생~하니 지나갔다. 네팔 젊은이 몇 명이 오토릭샤를 탄채 노래를 크게 부르면서 손을 흔들면서 지나갔다. 어느 나라없이 젊음은 자유다.

 

 

몇 발자국 둘레를 걸어보니 한국어가 적힌 플랭카드가 눈에 뜨였다. 자세히 살펴보니 “0 0 결사 인도-네팔 술례 라는 글귀가 보인다. 1년전 조계종 불교 성지순례단이 지나가며 버린 플랭카드인 듯 하였다. 순간, 속과 겉이 이렇게 다르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불교가 이 땅에 존재하는 이유가 무엇일까?

진정한 의미의 불교란 석가모니 부처님 한 사람으로 시작되었을까?

고타마 싯다르타가 부처를 이룬 것은 개인 수행의 결실이 아니라 부처가 되기 위한 무수한 인간 해방의 역사 속에서 나타난 역사적 결정체일 수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진리란 어떤 특정한 곳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고 특수한 사람의 전유물도 아니다. 진리는 온 우주에 충만해 있으나 우리가 보지 못할 뿐이다. 또한 진리를 볼 수 있는 길을 알아도 실천하지 않기 때문에 볼 수 없는 것이다. 진리란 불교라는 이름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화려하게 장엄된 웅장한 법당에서 보살의 수행에 대해 설법하는 스님보다 고통받는 이웃의 아픔을 함께 나누며 살아가는 사람의 모습에서 부처님의 진리와 보살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인간 붓다, 그 위대한 삶과 사상, 법륜 지음에서 발췌

 

불법(佛法)은 다른 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마음 가운데 선량한 마음이 일어나는 것이 곧 불법이다. 항상 자성을 닦으며 밖에 있는 것에 집착하지 말고 모든 것은 안에 있으니 밖에서 구하지 말아야 한다. 불교는 빌고 예배하는 것이 아니라 깨닫는 것이다. -실행론, 2-4-5 불법은 심인법-에서 인용

 

부처님 탄생지 룸비니에 와서 부처님도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태어나셨음을 알게 되었다.뜻밖의 일이다. 좀더 하심(下心)하고, 지심으로 참회하여 간탐심(慳貪心)을 없애고, 인과(因果)의 이치(理致)를 깨달아 구경성불(究竟成佛)하는 것이 진각인의 길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