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팔 불교 성지순례 여행기

인도네팔 불교성지순례-여행 셋째날-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로

이노두리 2025. 1. 27. 21:03

3일차----1114() -바라나시에서 보드가야로

-----04:00 모닝콜, 05:00 아침 공양, 05:50 호텔 출발

 

새벽 3시에 잠이 깨여 아침 염송을 하였다. 한국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로 안부를 묻는다. 오늘은 사망한 처남의 출상날이다. 한국시간으로 12시쯤에 영안실을 출발하여 영락공원으로 간단다. 화장하여 남은 뼈가루는 동해 바다 한가운데에 뿌릴 작정이라고 한다. 삶과 죽음이 공존하는 인도에 와서 어쩌면 죽음은 삶의 연속선상에 있다는 생각을 해 본다. 참으로 묘한 인연이다.

 

오늘은 보드가야로 가는 날이다. 보드가야 Bodhgaya는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은 곳이다. 보드가야까지는 전용버스로 6시간 30분 내지 7 시간 정도 소요된다고 한다. 해뜨기 전 출발이다 뿌연 하늘과 매쾌한 냄새는 버스안으로 스믈스믈 들어왔다. 승차하자마자 가이드는 가다가 볼 일이 있는 사람 은 신호가 오기 전에 미리 알려 주어야 노상방뇨가 가능하다고 한다.

 

포장된 도로는 울퉁불퉁하고, 오토릭샤와 오토바이와 도로 갓길로 사람들이 함께 걸어간다. 불현 듯 고행에 지친 몸을 이끌고 보리수 아래로 향하시던 부처님의 모습이 투영된다. 인도의 전통적인 모든 고행을 실천해 보신 뒤, 그러한 고행으로는 깨달음에 도달할 수 없다며 고행을 버리신 부처님, 목숨을 걸고 그 누구도 가지 않은 새로운 길의 수행에 몰입하시어 완전한 깨달음을 성취하시어 대자유인이 되신 부처님! 부처님은 그 옛날 이 먼길을 어떻게 걸어가셨을까? 방목하고 있는 소떼도 보이고, 화물열차도 길게 끝없이 먼 길을 달려간다. 긴 여정 끝에 SAROVAR PORTICO 리조트에 도착하여 늦은 점심을 먹었다.

 

 

2002년 룸비니, 샤르나트, 꾸시나가라와 함께 이곳 보드가야가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등록되었다 한다. 각기 다른 모습으로 각기 다른 종교를 갖고 있어도 위대한 부처님의 깨달음의 자취를 찾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이곳 보드가야에 오는 것이다. 서기전 3세기에 아소카 대왕이 부처님께서 깨달 음을 성취하신 자리 (금강보좌)에 사원을 건립하 고 석주와 승원을 세우고 울타리를 만들었다고 한다. 5세기 법현 스님과 7세기 현장 스님이 이 곳을 순례하고 기록을 남겼다 한다. 그 후 13세기에 이슬람의 침공으로 보드가야의 승려들이 모두 죽거나 다른 곳으로 피신하고 세 월의 흐름에 따라 홍수와 흙에 묻혀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다 한다. 보리수는 600여 년을 땅속에 묻혀 있었던 것이다.

 

 

1811년 버마의 보도우파야왕이 이곳을 방문하였고, 1847년 인도 정부를 향해 사원을 중수해 달라는 국서를 보냄과 동시에 많은 사람과 돈을 보내 이곳을 중수했다. 1883년 영국의 고고학자 커닝엄의 발굴 작업과 동시에 1884년 인도 정부가 발굴 작업과 재건사업을 시작했다. -인간 석가모니를 만낟, 헤정 정사 지음. 붓다의 향훈을 따라서, 대연 스님 지음, 해조음에서 발췌함

 

싯타르타는 부왕의 만류를 뿌리치고 29세에 출가하였다. 6년간의 고행 끝에 넬란.잘라강으로 내려와 목욕하고, 마을 처녀 수자타가 공양해 준 우유죽으로 원기를 회복한 다음 이 곳 보리수 아래에서 마침내 깨달음을 얻으셨다. 이 때부터 인간 싯타르타는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자로서의 붓다 Buddaha, 또는 사카이족의 성자 석가모니로 불리게 되었다.

 

이 세상에서 보살 보다 더 지독한 고행을 한 사람 은 아무도 없었다. 그래도 깨달음은 오지 않았다. 6년 고행으로 깨달음을 얻지 못하자 고행이 해탈 로 가는 길이 아니라는 결론을 내렸다. 극도로 여 윈 몸으로는 수행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수자타가 준 음식을 먹고 몸을 회복했다. 그러자 시중을 들던 다섯 비구들이 고행을 포기한 그를 떠나 바라나시 근처의 녹야원으로 가 버렸다. 보살은 보리수 아래에 앉아 초선, 이선, 삼선, 사선을 차례로 성취했다. 모든 번뇌를 소멸하는 지혜를 성취하고 모든 번뇌에서 해탈했다. 보살은 완벽한 깨달음을 성취했다는 생각에 기쁨이 일어났다. 완벽하게 해탈했다는 생각에 환희가 일어났다. 붓다의 정수리에서 진리를 깨달은 자에게만 나타나는 찬란한 지혜의 빛이 뻗어나와 우주를 비추었다 이제 세상의 어둠이 물러가고 빛이 나타났다. 이 때가 기원전 589년 음력 4월 보름이었다.

 

 

위없는 지혜로 마라의 군대를 물리치고 보살은 정등각자, 붓다가 되었다.

 

붓다는 정각 후 7주 동안 보리수 주변에서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반조하고 열반의 기쁨을 누리며 보냈다.

 

그 후 붓다는 자신이 깨달은 진리를 다섯 비구에게 전하기 위해 사르나트로 떠났다.

 

-인도 불교성지순례 가이드, 무념엮음에서 발췌-

 

 

기원전 260년에 아소카 왕이 순례를 왔다 이후 이곳은 대보리(Mahabodhi), 금강좌(Vajirasana)등으로 불렸다. 마하보디 불당은 원래 지붕없이 보리수를 둘러싼 단순한 형태의 보리당이었다가 불상이 제작되기 시작한 쿠산시대에 들어와서 비로소 불상을 안치한 대탑으로 바뀌었다고 추정한다.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다녀갔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도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단체로 오고, 오랫동안 헌공을 올리는 스님들도 있었다. 그들은 불상에 예배하면서, 이 공덕으로 소원이 이루어지기를 기원하고 있다.

 

 

 

마하보디 사원을 들어가려면 입장료를 내야만 한다. 더구나 휴대폰 소지는 금지되고 카메라를 소지하려면 CAMERA FEE100루피(1,670)내고 패스권을 따로 구입해야 했다. 탑은 크고 넓으며 아름답게 장식되어 있으며, 붓다의 사리가 봉안되어 있다 했다. 마하보디 대사원, 금강보좌와 보리수 등을 둘러보고,경내를 돌다가 한국에서 왔다는 비구니도 만났다.

인도에서 불법을 공부하고 수행중이라 하였다. 반가웠다.

 

 

 

 

<생활 속의 실천불교-그림으로 보는 진각종-대한불교 진각종 발행> 에서는 부다가야에서 전 세계로 불교가 전파하면서 대승불교로 발전하였고, 오늘에 이르렀다고 쓰여져 있다. 부다가야가 바로 보드가야 임을 이번 인도여행을 통하여 알 수 있었다. 태국, 캄보디아, 베트남 등 동남아를 여행하면서 보았던 불상들이 이곳 보드가야에서 보았던 불상들과 많이 닮아 있다고 느꼈다. 중국, 한국, 일본의 국가에서 보는 불교 사원들은 각각의 전형적인 양식으로 지어져 다양한 문화의 관점에서 조금씩 차이가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오후 430분에 호텔로 돌아왔다. 휴식 후 6시에 저녁식사를 한다고 했다. ROOM에 돌아와 실내 온도, 습도에 신경을 쓴다. 온도 23, 습도는 69%이다 (필자는 온습도계를 가지고 다녔다) 에어컨을 켜서 실내 온도를 조절하였다. 습도는 높은 편이었다. 내일 출발을 위하여 20:30분에 잠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