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시

늦가을 단풍

이노두리 2021. 11. 17. 12:13

 

늦가을 단풍

 

-박상봉

 

 

 

내 나이 어느덧 해가 지듯 저물어간다

 

새벽 찬 서리에 기침 소리 잦아지고

돌아보면 외진 산길 울퉁불퉁 걸어온 인생

 

험한 세월 비바람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며

강바닥에 뒹구는 돌같이 살았다

 

한때 빛나던 시간 아름다운 색깔을 지녔으나

강물에 청벙 발 담그고 들어가 돌 하나 건져보면

어느 길에나 널린 평범한 돌덩이 까칠하게 만져질 뿐이다

 

새찬 빗줄기 맨몸으로 맞으며 뛰고 달리던

가슴이 펄펄 끓던 청년은 간 곳 없고

 

희어진 머리카락, 넉넉한 뱃살에 한숨짓고

눈물 떨구며 우울증에 빠지기도 하지만

 

이제는 절로 고개 숙여지는 무르익은 나이

저만치 창가에 차오르는 햇살부터 느낌이 다르다

 

쨍하고 어수선한 한여름의 그것보다

어딘가 모르게 한풀 꺾인 뉘엿뉘엿 여유로움이 느껴지는 가을

 

지천명의 가을은 오금 저리게 아름답고

한껏 보기 좋은 환한 날이다

온 산 다 껴안고 나서 비로소 물드는 절정의 단풍나무 숲으로

무거운 짐 벗어놓고 가야 할 길이다

 

 

 

-박상봉  시집 <불탄 나무의 속삭임> 중에서

 

-1958년 경상북도 청도에서 출생.

-1981년 박기영. 안도현. 장정일 등과 '국시' 동인 활동

-2007년 <카페 물땡땡> (만인사) 발간

-여러 지역에서 지역문화산업 기획과 시창작 지도를 하면서

'시공간' 동인으로 활동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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