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읽는 시
입석은 자꾸만 기차를 흔든다
이노두리
2020. 9. 15. 13:02
-김 연 화
미리 예매하지 못한 자리는 모두 입석이다
서울에서 구미까지
크고 작은 산들 틈으로 열린 철로는
강과 그 강물이 키운 들녘을 호령하며 간다
서서 보는 차창 밖 풍경
더 먼 곳까지 바라볼 수 있는 친구를 얻었다
풀리는 다리 힘 너머로 완강히 버티고 선
철교를 지날 때면 세상마저 흔들렸다
내 시선이 가닿은 옆자리 주인 일어서면서
"여기 좀 앉으세요"
하고 내 환절기 옷자락을 끌어당길 것 같은데
내가 감은 눈을 뜨면 그가 뜬 눈을 감는다
세 시간을 침목처럼 버텨온 다리로
남은 하루를 지탱해야 하는가
영법 泳法을 익히지 못했는데도 강을 건너는 오후가 부끄럽다
빈틈없이 앉은 사람들
가까울수록 먼 풍경을 그리는 것일까
또 하나 낯선 강을 건너는가 보다 철거덕철거덕
물결 소리로 강을 건너는 피로가 짐짝처럼 졸립다
먼 산의 무게로 매달린 입석이 자꾸만 열차를 흔든다
<詩읽는 CEO> 라는 책이 있다.
詩가 별것인가, 이 가을엔 누구나 읽어도 詩는 시다.
지난 9월2일 수요문학회가 주관한 시집 출판기념회 및 시 낭송회에서
김범용 씨가 낭송한 '입석은 자꾸만 기차를 흔든다'는 詩다.
그는 내가 잘아는 중소기업의 사장, 즉 CEO이다.
음악을 좋아하고, 여행을 좋아하고 특히 몽골에 대해선 박사 수준인 것으로 알고 있었던 그이가
詩를 낭송한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래, 이 가을엔 누구든 시 한수를 낭낭히 읊어 올릴 수 있고, 시인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반가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