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집
-김 연 화
고샅길 초입 느티나무 숲이 있었다 작은 내를 끼고 가파른
언덕을 지나야 마중 나오는 늙은 집 나보다 두 살 위인 소몰
이꾼이 무화과나무 잎에 몸을 숨긴 채 기타와 하모니카를 연
주해 주던 뒤란 백작약 꽃을 뿌리채 뽑아 흙과 함께 비닐봉
지에 싸서 열두살 가슴에 안겨주던 날이 역마살 짙은 바람
으로 떠돈다 새들이 흔들어놓은 미루나무 숲길을 역류해 작
약 뿌리에 매달린 '메기의 추억'하모니카 소리가 내 무릎 치
마에 휘감길 때까지 걷는 미루나무 숲 서른 해나 지난 세월
이 머리를 헤치고 흰 사슴을 몰고 나에게로 올 거라는 생각
을 했다 새벽 4시면 교회 종탑에서 잠 덜 깬 종소리가 쏟아
져 내리고 성경책을 끼고 사립문을 여시던 엄마는 나의 바다
빛깔 물방울 무뉘 그려진 원피스 마무리하지 못한 채 서둘러
별을 따라 떠나셨다 흔들리는 언덕 위 벽오동잎 무리 지어
무너져 내리는 어스름이 오면 이슬 맺힌 풀잎마다 수리부엉
이가 울었다 그 긴 세월 흔들리는 고샅길 휜 그림자 너머 상
현달이 뜬다 달의 이마 위 새겨진 그리움 하나 빈집이다 빈
집 가득 달빛이 남긴 그늘 두텁게 쌓여 있다

-김연화 시인의 첫시집
초록나비가
구미 수요문학회 가 주관한 시 낭송회에서 발표되었다.
금오산 뒷길 커피베이에서 지난 9월 2일 가을 저녁에
박상봉 시인외 여러 문인들이 모여
시집 출간 기념회겸 자작시를 낭송하였다

초록 나비
-김연화
꽃들 잔칫상 물린 자리
오월 끝자락 잎들의 세상은
사람만 두고 모두 초록이다
잎사귀의 꿈이 나비가 되었을까
초록 날개 저어 봄을 건너온 유월
금오산 기슭에서 본다
표본실에서도 본 적 없는 초록 나비
눈부시지 않아서 더욱 아름다운
봄꽃 떠난 세상을 온통
휘젓는 초록의 날개짓이
평온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