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 항암 가발
7월 20일 금요일
항암 가발, 우선 듣기만 하여도 섬뜩하다.
옷걸이에 걸린 가발이 밤중에 ’처녀귀신‘처럼 보여 깜짝 놀라기도 하였다.
아내가 가발을 쓰기 시작한 것이다. 다행이 아직까진 자세히 보지 않으면 가발을 썼는지 알아채지 못한다. 시작한지 며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함암주사를 일주일간 맞고 처음 집에 온 후, 아내는 새파랗게 질려 있었다.
”여보, 이봐요 머리가 이렇게 많이 빠져요“ 거울앞에서 아침 몸단장을 하던 아내가 놀랜 기색으로 한 말이었다.
‘올 것이 왔구나’ 싶어 쳐다보니 한움큼의 머리카락을 움켜진 채 울먹일 듯한 표정이었다. 애써 그녀의 얼굴을 외면하였다. ”이번 항암제는 머리카락이 많이 빠지지 않는다 하던데...“
시장을 다녀오던 길에 가발 하나를 사왔다. 항암 가발인 것이다. ”얼마 주었어?“ 아주 비쌀 것이라 생각하며 물었다. ”18만원“ 아내는 싼걸 골랐다고 했다. ”이왕이면 좋은 걸 사지 그래?“ 잘 알지도 못하면서 위로차 한마디 던져보았다.
거울앞에 선 아내가 어색했다. ”가발 안쓰도 되잖아“ 아직 머리카락이 많이 빠져 보기 싫을 정도도 아닌데 뭘 표시나게 가발을 쓰냐 하는 의미였다. 암환자로 남들 눈에 보이는 것이 싫었던 것이다.
돌아가신 장모님이 암으로 투병하실 때도 가발을 쓰고 다시는 걸 본 기억이 없다. 장모님은 머리에 모자를 쓰셨거나 머리 두건을 하시고 나다니신 걸로 어름풋이 기억이 있다.
그동안 아내는 마음고생을 한 것 같다. 특히 외출 시 머리단장을 한참동안이나 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뒷머리가 이쁘다고 만나는 사람마다 ”어느 미장원에서 손질하냐?“ 고 입을 댄다고 했었다.
듬성듬성 머리카락이 빠진 싸움닭 머리를 거울앞에서 볼 때마다 그녀는 겁에 질려 있었던 것이다.
항암제의 독성을 견딜 수 있다면 그까짓 머리카락 몇 올 빠지는 것은 어떠랴 싶다.
함암제의 부작용은 ‘백혈구나 혈소판 감소증, 탈모, 오심, 구토, 피로 등이다. <대장암 100문 100답> -p74, 국립암센터 刊
구토 부작용이 없는 것만 해도 다행이다.
억지로라도 잘 챙겨 먹으려 노력하고 걷기운동도 열심히 한 덕택이다.
아내는 매일아침 남편 머리 손질도 하여왔다. 말총머리인 신랑, 빗질로는 머리손질이 잘 안되어 혼자 드라이기로 애를 먹고 있는 남편 꼴을 못보았다. 드라이기를 뺏다시피하여 익숙한 솜씨로 머리손질을 하여 ‘스프레이”까지 씨익~뿌리고서야 ’‘오케이“하던 그녀였다. 전용 미용사인 셈이었다.
며칠째 가발을 꺼내 거울앞에서 썼다, 벗었다 했다.
자신감이 생겼는지 간혹 가발을 쓰고 외출하기도 한다. 오늘도 내가 ’라인미용실‘에 이발을 하려 갔던 때의 일이다. 이번 일요일에 간호차 함께 일산으로 가려면 터벅한 머리로 갈 수 없어 단골 미용실에 갔었다. 머리를 다 깎고 났을 때, 아내가 미용실 문을 열고 들어섰다. 머리두건을 하고 있었다. 머리두근을 잠시 벗으니 항암가발까지 보였다. 그런데 아내는 아무렇지도 않다는 표정이었다.
미용실에서 함께 나오면서 아내에게 물었다. “얼마 주었어?”
“무얼?”하는 얼굴이었다. “머리에 쓴 거” “아 이것, 만구천원...”
대답이 바로 돌아왔다. 장보러 ’롯데마트‘에 갔다가 하나 샀다는 것이다. 병원에 갈 준비물도 이것저것 한보따리 샀다고 한다. 입원에 대비하여 내일은 여행용 케리어와 보따리를 싸야 할 것이다.
아내의 가방과 나의 가방, 가져가야 할 짐이 수북하다.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메모지에 기록하여 체크하듯이 하나하나 짐을 쌀 것이다. 챙겨야 할 물건들이 히말라야 등산가 준비목록 수준이다.
아내 건강만 좋아진다면 무엇이 문제랴?
항암 가발은 언젠가 필요없을 날이 올 것이다.
머리카락은 새로이 자라날 것이다. 내 머리카락이 한달이면 어김없이 자라듯이 아내의 머리카락도 그만큼 자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