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7. 나는 아직 몽롱하다
집으로 돌아와서 첫째날, 일주일이나 비워 둔 집은 건강했다.
베란다의 화초들이 약간 풀이 죽어 있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백은 새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군자란, 천리향, 카필라도 고객를 들고 있다. 라일락도 숨을 죽이고 흔들리고 있고, 제라늄도 여전히 붉은 꽃 일곱송이를 뽐내고 있다. 다육이도 행복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해바라기는 액자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내는 간밤 골아떨어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아침에는 꽃들에게 물도 주고, 도마토 쥬스도 만들고 계란도 삶아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밤새 몇 번이나 장단지에 경련이 와서 잠을 설쳤던 나는 11시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었다. 그동안 조선일보가 현간 입구에 차곡히 쌓여있었다. 유나 엄마(며느리)가 다녀간 모양이다.
조간신문에는 ’또 울린 경제 경고음...文대통령, 기로에 서다‘가 1면 톱기사다.
문제는 성과야, 이 바보들아
함암도 좋아져야 명의가 되는 게 아닌가?
잠시 아내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본다. 잠은 잘 잤느냐, 통증은 없는가, 변은 보았는가? 집으로 돌아오니 폭신한 침대여서 잘 잤느니, 통증은 오케이, 변은 어제 저녁 변비약을 먹고 좋아졌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보다 더 좋은 성과가 없을 성 싶다. 의사는 계속 진행형이라 했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년전 오늘 부산의 동생(경석)이 저 세상으로 갔다. 방광암으로 수술하여 그 후유증으로...
부산대학병원에서 수술하였으나 뼈로 전의되어 6개월도 안되어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병원에서 보았던 동생은 앙상하게 야위어있었고, 힘없이 몇마디 대화를 하였었다. 그 후 귀가하여 며칠 후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니 통곡할 일이었다.
병원치료를 거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거슬러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에는 우연이라 할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암으로 죽었다. 함암, 방사능 치료, 수술로 이어지는 뻔한 결과, 장모님(지윤의 엄마)도 자궁암 수술을 받고 1년 후 재발하여 고통, 고통을 받다 몇 개월 후 돌아가셨었다. 그 때 연세가 61세, 20년 전 이야기다.
암 치료술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각종 통계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는 자꾸만 불어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선 이제 암환자 이야기가 세집 건너 한 집 이야기다. 완치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걱정만 책장높이만큼 쌓여간다.
쌓여있는 신문들을 뒤적이다 보니 1시 반을 훌쩍 넘었다. “여보 점심 먹어야지” 하고 불렀다. 안방에 누워있던 아내는 짜증이다. “후유증으로 몽롱한데 밥 타령이야” 이런 의미없는 소리가 내 귀에 되돌아왔다. 병원을 다녀 왔으니 건강해 졌겟지 하는 내 생각이 완전 착오다.
투털거리면서도 챙겨놓은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햇반에 된장국, 병원에서 먹다 남겨온 아삭고추에다 묵은 김치다. 밥짓는 법과 반찬거리 장만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만 하고 실천에 못 옮긴 일을 이번에는 도전해 봐야겠다.
게눈 감추듯 설저지를 마치고 컴퓨터앞에 앉아 본다. 설거지는 초보수준은 넘어섰다. “혼자 서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늘상 얘기해 왔다.
김형석교수의 100세 일기- ‘할머니들이 무서운 세상’ 컬럼에 수영장에서 쫒겨나는 할아버지들의 일화를 적고 있다. 할머니들은 한 레인에 2~3명 할아버지는 5~6명이 수영하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칸으로 갔다가 덩치 큰 분에게 바로 쫓겨났다 한다. 할머니들은 40~50명, 할아버지들은 5~6명이니 “세상이 여성사회로 바뀌고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존재가치가 없는 인생으로 밀려날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나도 할아버지다.
“사실은 나도 몽롱하다...ㅠㅠ”
아들과 며느리와 유나가 저녁 식사시간에 맟추어, 족발과 떡뽑기에 깁밥을 싸들고 왔다.
“그동안 유나 잘 있었어요?” “어린이집 친구들과 잘 지냈어요?"
할머니는 유나를 안아준다. 유나의 표정은 해맑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잘도 논다. 인형에게 물도 먹이면서 엄마 노릇을 한다. 네살배기 유나는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다. 유나를 오랫동안 보기 위해서도 아프지 않고 더 살아야 한다.
”할머니 아파요?“ ”어디가 아파요?“ "그래 할머니는 조금 아프단다."
밤 9시가 넘어 유나가 깡충대며 돌아갔다. 할머니도 ”내일 만나자.“한다.
나의 하루만보 걷기는 712걸음,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밖으로도 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