암 투병기

07. 나는 아직 몽롱하다

이노두리 2018. 8. 23. 07:37

집으로 돌아와서 첫째날, 일주일이나 비워 둔 집은 건강했다.

베란다의 화초들이 약간 풀이 죽어 있었지만 평정심을 유지하고 있는 것 같았다. 동백은 새눈으로 나를 쳐다보고, 군자란, 천리향, 카필라도 고객를 들고 있다. 라일락도 숨을 죽이고 흔들리고 있고, 제라늄도 여전히 붉은 꽃 일곱송이를 뽐내고 있다. 다육이도 행복하세요 하고 인사하며, 해바라기는 액자속에서 웃고 있었다.

아내는 간밤 골아떨어졌던 것과 대조적으로 아침에는 꽃들에게 물도 주고, 도마토 쥬스도 만들고 계란도 삶아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밤새 몇 번이나 장단지에 경련이 와서 잠을 설쳤던 나는 11시에야 자리를 털고 일어나 조간신문을 읽었다. 그동안 조선일보가 현간 입구에 차곡히 쌓여있었다. 유나 엄마(며느리)가 다녀간 모양이다.

조간신문에는 또 울린 경제 경고음...대통령, 기로에 서다1면 톱기사다.

문제는 성과야, 이 바보들아

함암도 좋아져야 명의가 되는 게 아닌가?

잠시 아내의 건강상태를 체크해 본다. 잠은 잘 잤느냐, 통증은 없는가, 변은 보았는가? 집으로 돌아오니 폭신한 침대여서 잘 잤느니, 통증은 오케이, 변은 어제 저녁 변비약을 먹고 좋아졌다는 답변을 듣는다. 그보다 더 좋은 성과가 없을 성 싶다. 의사는 계속 진행형이라 했지, 안심할 수 있는 상황은 아니다.

 

일년전 오늘 부산의 동생(경석)이 저 세상으로 갔다. 방광암으로 수술하여 그 후유증으로...

부산대학병원에서 수술하였으나 뼈로 전의되어 6개월도 안되어 불귀의 객이 된 것이다. 병원에서 보았던 동생은  앙상하게 야위어있었고, 힘없이 몇마디 대화를 하였었다. 그 후 귀가하여 며칠 후 사망하였다는 소식을 접하니 통곡할 일이었다. 

 

병원치료를 거부한 이유도 이 때문이 아니었던가,

거슬러 생각해 보면 우리 주위에는 우연이라 할 것 없이 여러 사람들이 암으로 죽었다.  함암, 방사능 치료, 수술로 이어지는 뻔한 결과, 장모님(지윤의 엄마)도 자궁암 수술을 받고 1년 후 재발하여 고통, 고통을 받다 몇 개월 후 돌아가셨었다. 그 때 연세가 61, 20년 전 이야기다.

암 치료술은 얼마나 나아졌는가?

각종 통계에도 불구하고, 암 환자는 자꾸만 불어나고 있다. 우리 주위에선 이제 암환자 이야기가 세집 건너 한 집 이야기다.  완치란 과연 가능한 일일까, 이런 저런 생각에 걱정만 책장높이만큼 쌓여간다.

 

쌓여있는 신문들을 뒤적이다 보니 1시 반을 훌쩍 넘었다. “여보 점심 먹어야지하고 불렀다. 안방에 누워있던 아내는  짜증이다. “후유증으로 몽롱한데 밥 타령이야이런  의미없는 소리가 내 귀에 되돌아왔다.  병원을 다녀 왔으니 건강해 졌겟지 하는 내 생각이 완전 착오다.

투털거리면서도 챙겨놓은 아점(아침 겸 점심)을 먹는다. 햇반에 된장국, 병원에서 먹다 남겨온 아삭고추에다 묵은 김치다. 밥짓는 법과 반찬거리 장만하는 법을 배워야겠다,  생각만 하고 실천에 못 옮긴 일을 이번에는 도전해 봐야겠다

게눈 감추듯 설저지를 마치고 컴퓨터앞에 앉아 본다. 설거지는 초보수준은 넘어섰다. “혼자 서는 법을 배우라고 아내는 늘상 얘기해 왔다.

 

김형석교수의 100세 일기- ‘할머니들이 무서운 세상컬럼에 수영장에서 쫒겨나는 할아버지들의 일화를 적고 있다. 할머니들은 한 레인에 2~3명 할아버지는 5~6명이 수영하다 용기를 내어 할머니칸으로 갔다가 덩치 큰 분에게 바로 쫓겨났다 한다. 할머니들은 40~50, 할아버지들은 5~6명이니 세상이 여성사회로 바뀌고 우리같은 노인네들은 존재가치가 없는 인생으로 밀려날지도 모르겠다고 하는 말이 빈말이 아닌 것 같다고 한다.

나도 할아버지다.

 

사실은 나도 몽롱하다...ㅠㅠ

 

아들과 며느리와 유나가 저녁 식사시간에 맟추어, 족발과 떡뽑기에 깁밥을 싸들고 왔다.

 그동안 유나 잘 있었어요?” “어린이집 친구들과 잘 지냈어요?"

할머니는 유나를 안아준다. 유나의 표정은 해맑다.

거실에 들어서자마자 혼자서 소꿉놀이를 하면서 잘도 논다. 인형에게 물도 먹이면서 엄마 노릇을 한다. 네살배기 유나는 할머니에게는 유일한 희망이다. 유나를 오랫동안 보기 위해서도 아프지 않고 더 살아야 한다.

할머니 아파요?“ ”어디가 아파요?“ "그래 할머니는 조금 아프단다."

9시가 넘어 유나가 깡충대며 돌아갔다. 할머니도 내일 만나자.“한다.

 

 

나의 하루만보 걷기는 712걸음, 거의 움직이지 않았다. 밖으로도 나가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