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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지심도의 동백 화신(花信)/소설가 박태순

이노두리 2007. 1. 21. 19:11

하늘과 바다가 경계를 허물어 한껏 트였고 수평선 위로 두둥실 섬 하나가 물안개에 휩싸여 떠 있다.

 

 

판타지를 감춘 별세계임을 알려주려는 듯싶은 섬, 지심도(只心島)다. 위에서 내려다볼 적에 길쭉한 섬의 모습이 ‘마음 심(心)’이라는 글자와 비슷하다 해서 이런 이름을 애틋하게 얻게 되었다 한다.

‘애오라지 한마음의 섬’이라고 달리 풀이해본다. 장승포 유람선 도선장에는 ‘동백섬 지심도에서 쉬고 싶다’라고 써놓은 입간판이 보인다. 여태까지는 거제시 안에 숨어 있던 동백섬이었을 것인데, 사통팔달의 교통망 확충으로 온갖 정보들마저 널리 전파된다. 이제부터는 전 국민의 그리움과 기다림을 담아내는 지심도가 되고 싶어 하는 것인가.


‘저 바다가 육지라면 이별은 없었을 것을…’이라 읊어대던 유행가가 있었지만,

단 바다는 바다여야 하고 육지는 육지여야 하는 것 아닌가.

지심도는 바다 바깥으로 떨어져 나왔기에 환경훼손 없이 깔끔하게 동백꽃의 수림들을 지켜내고

아울러 ‘동백섬’의 명성을 차지해놓을 수 있었을 터.

#봄을 기다리는 마음과 동백꽃의 상상력

“사람과 사람 사이에 섬이 있다. 그 섬에 가고 싶다.”

장 그르니에의 ‘섬’이라는 에세이, 그리고 정현종의 ‘섬’이라는 시는 근대의 황무지를 겪어온

이 땅의 청춘남녀에게 자기만의 탈출 항구와 기항지를 점찍어주고 싶어한다.

육지는 권력과 욕망과 광기에 휩싸여 있는 것처럼 느끼게 되니 모처럼 만에 내 마음의 항로를 찾아

동백섬으로 벗어나왔다는 해방감이 있다.

예이츠가 그리던 이니스프리 호수의 섬을 찾은 것과도 같은….

 

지심도는 500m 정도의 너비에 1.5㎞의 길이로 늘어져 있는 타원형의 섬이고

기암괴석의 해안선 둘레도 3.7㎞에 불과하다. 10만 2천여평(0.356㎢)의 면적이니 도(島)라기보다는

서(嶼)라 해야 할 것이지만, 연륜의 볼륨은 넓고 크다.

1,200년 묵은 고령의 동백도 있다는데 500~600살 너끈한 나이의 동백나무 숲과 터널로 울울창창이다.

여기에 대숲과 솔숲이 끼어들어 왕성한 식물사회를 이룬다.

대숲바람은 살랑거리고 솔숲바람은 속살거리고 동백숲 바람은 흥얼거린다.

댓닢-솔닢-동백잎의 두께와 폭이 다른 데에서 바닷바람의 탄주가 달라지는 것인데, 멀리의 파도는

거기에 칭얼거리는 소리를 보탠다.

민박 가게의 홍종관씨(51)는 아예 차트를 준비해놓았는데 37종의 식물군락과 야생화가 자생하고 있다고

씌어 있다. 온갖 철새들과 함께 직박구리 동박새 등의 텃새들도 성화를 부리는데 얌체머리 없는 새가

팔색조라서 도무지 사람들에게 정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섬 사람들은 ‘마끝’ ‘새끝’이라 부르는 두 곳에 나뉘어 사는데 유람객보다는 주로 낚시꾼 상대의 ‘서빙’으로

생업을 삼는다. 전에는 마늘 고구마 유자 밀감 등의 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모두 손을 놓아버렸다.

인구 이동은 없는데, 사유지가 허가 될 수 없는 데서 다만 원주민이라는 기득권만 인정받아 지내온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들은 섬 전체를 내 집 마당으로 알뜰살뜰 가꾸어 ‘토박이 정신’을 십분 발휘한다.

섬의 높은 지대에는 국방과학연구소 파견소가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군사시설물

잔해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기도 하다.

겨울(冬)에도 꽃을 피운다 해서 ‘동백’이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이련만, 봄의 전령사는 항상 고난의 행군을

하게 마련인가. 동백을 일본에서는 춘목(椿木)이라 하고 이에서 연원되어 동백아가씨 ‘춘희(椿姬)’의

러브스토리가 ‘빼앗긴 봄 시절’의 한국에도 알려진다.

베르디의 오페라 ‘라 트라비아타’는 ‘방황하는 여인’이란 의미인데, 일본과 한국에서는 이마저도

‘신여성’의 이미지로 받아들였던 것이나 아니었는지.


 

크루즈여행이라 하던가, 장승포 지세포 구조라 몽돌해수욕장의 포구들은 섬-바다-명승지를 관광상품으로 엮는 ‘해상투어’의 명소들로 등장된다.

이 상품들은 더욱 고급화될 것이다. 구조라 포구 바깥의 내도와 외도, 특히 외도는 에게해와 아드리아해를 동경하게 하는 풍광을 마련해놓고 있다는데 후일을 기약한다.

가던 날이 장날이던가, 학동 몽돌해수욕장에서는 ‘고로쇠 약수 축제’가 벌어지고 있다. 봄의 찬가를 위해 몰려오는 이들에게는 해금강 일대의 쪽빛 바다와 새빨간 동백이 평생 남을 추억의 명품으로 축적될 것이다.

그러함에도 바다 사람들의 바다를 육지 사람들이 너무 가로채려 해서는 아니 될 노릇이기는 하다.


-2007.1.18  일부 줄여 옮김.---이노

 

 


 

출처 : 이노시스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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